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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반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프로레슬링과 장영철 선수의 이야기

by 해설가 2022. 5. 23.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프로레슬링과 장영철 선수의 이야기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프로레슬링

1960년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스포츠 경기 중 하나는 프로레슬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가장 많은 팬층이 있는 축구나 야구도 당시에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지만 1960년대를 대표한다는 전제를 달게 된다면 단연 프로레슬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레슬링은 1960년대 만의 특수성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살지 않아 프로레슬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한 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이 박치기 왕 김일 선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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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치기왕 김일의 위상

김일 선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서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김일 선수의 경기를 TV를 통해 직접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그 이하 세대의 사람들도 이름 정도는 들었을 것입니다.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김일 선수가 본인의 주특기인 박치기를 사용하여 상대 선수를 쓰러트리면 관중들은 열광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흉내 내며 놀기도 했고 이곳저곳에서 김일 선수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김일 선수의 위상과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박치기 왕 김일 선수

3. 프로레슬링의 초석을 닦은 장영철 선수

김일 선수가 프로레슬링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한국의 프로레슬링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은 아닙니다. 김일 선수 이전 한국의 프로레슬링의 초석을 닦은 인물을 장영철 선수입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이라는 종목은 단순히 몇몇 외국인 선수들이 했던 이벤트 시합을 통해 서양 씨름 정도로 알려졌고 정식적인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 정착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장영철 선수는 1959년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지속적으로 프로레슬링 시합을 이어갔습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초석을 닦은 장영철 선수

 

4. 한국의 프로레슬링을 시작한 장영철 선수의 노력

1963년에 장충체육관이 개관한 이후에 장영철 선수는 장충체육관에 일본 헤비급 챔피언을 초청해 시합을 열었고, 이 시합에서 끈질기게 싸운 끝에 승리를 거두면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합을 통해 한국이 일본에게 승리를 거둔 것처럼 여겼으며, 과거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식민 지배의 분을 풀어내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장영철 선수의 시대는 길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던 김일 선수가 1965년 귀국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63년 프로레슬링 대회

5. 한국의 프로레슬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김일 선수의 공헌

일본 프로레슬링의 영웅이었던 역도산의 제자 김일 선수는 일본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스승 역도산이 사망한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미 세계적인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김일 선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특히 일본 선수는 물론 세계 챔피언 등 미국 선수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모두 쓰러트리는 김일 선수에게 한국인들은 열광하게 됩니다. 

 

김일 선수를 통해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김일선수의 귀국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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