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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과정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정리

by 해설가 2022. 7. 4.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과정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올림픽 개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과정

1980년대의 대한민국 문화사를 말할 때 스포츠 분야에서는 꼭 뺄 수 없는 사건인 1988년의 88 서울 올림픽에 대해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은 1980년대 들어 88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명실상부 스포츠 공화국으로 자리 잡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88 서울 올림픽 이외에도 1980년대에는 스포츠와 관련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건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나 의미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울 올림픽만큼 중대한 사건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1년 9월 7년 뒤 개최될 1988 올림픽의 개최권 선정이 있었고 이날 한국이 개최권을 따내게 됩니다. 한국이 개최권을 따내게 된 과정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 상황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노력은 1979년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개최를 위한 노력은 1970년대 지속된 남과 북의 스포츠 경쟁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48년 분단을 겪은 이후 2년만인 1950년에 3년 동안 전쟁을 치른 이후 휴전을 하였지만 군사적인 대립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중반에 있었던 베트남 전쟁의 여파가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남북 간의 군사적인 충돌이 급증을 하게 됩니다. 

 

 

 

 

 

1970년대 시작된 남북관계 변화

여기에는 북한의 남조선혁명론이나 군사모험주의 등으로 인해 1968년에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울진, 삼척 무장 게릴라 침투 사건 등 대규모 군사도발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각한 안보위기가 한반도에 닥쳤지만 1970년대 들어서 베트남 전쟁 평화회담과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외교가 시작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데탕트라고 불리는 대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관계가 대화 분위기기 전개되면서 남북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스포츠 분야 경쟁의 시작

1971년에는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1972년에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본격적으로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남과 북의 대화 국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 남북 대결은 군사적, 정치적인 대립에서 경제적, 문화적 경쟁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남과 북이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직접 군사적인 대립을 통해 증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잘살고 더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때 남북 체제 경쟁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고, 그게 바로 스포츠 분야였던 것입니다. 개별 종목에서의 경쟁이 이어지던 중 북한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을 묵직한 한 방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올림픽 개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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